전시경력

전시명 30분 이상
전시기간 2018-02-15 ~ 2018-09-26
전시장 백남준아트센터 제1전시실
기획
《30분 이상》전은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을 동시대 미국과 유럽을 뒤흔들었던 반문화의 흐름 속에서 재조명하는 전시이다. 1960년대의 미국 사회는 20세기 전반을 휘저은 서구 문명에 대한 반성이 점차 기성 가치에 대한 전면적인 반대 운동으로 점화되어가던 시기로 백남준 역시 이러한 문화적 자장 안에서 활동하였다. 이제 막 상품화와 자동화의 시대로 빨려 들어가던 동시대인들을 향해 내린 백남준의 긴급한 처방이 바로 비디오아트였다.
'30분 이상’은 백남준이 작성한 글 「실험 TV 전시회 후주곡」(1963)에서 자신의 텔레비전을 30분 이상 지켜볼 것을 요청한 것에서 따온 것이다. 전시는 이 30분의 의미를 타자와 공감하기 위한 필요 조건이자 소통의 여정으로 해석하였다. 백남준에 따르면 비디오아트는 지금, 여기를 벗어나기 위한 ‘조화로운 혼돈’의 경유지이자 저기, 너머로 가기 위한 상상력의 출발점이 된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점점 더 딱딱해져가는 우리의 마음이 그의 비디오아트로 해제되어 공감의 연대가 퍼져나가길 기대해본다.
전시개요
Ⅰ. 꽃의 아이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성장한 미국의 전후 세대들은 기성세대가 주도한 동서 냉전의 상황 속에서 벌어진 정치적 탄압, 이념 전쟁을 놓고 서로 대립하였다. 미국이 일으킨 전쟁 중 가장 추악한 전쟁으로 평가되는 베트남 전쟁은 이 대립을 극단으로 몰아갔고 전쟁에 대한 반대를 넘어서 미국 사회의 모든 주류적 사고와 문화, 철학에 반대하는 반문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특히 1950년대 미국의 비트 세대들에 의해 시작되어 점차 청년, 학생, 지식인들에 의해 주도된 히피 운동은 1960년대 반문화 운동을 주도하며 세계 역사상 가장 자유로우면서 극단적인 상상력의 시대를 만들어냈다. 백남준은 반문화 운동을 이끌었던 시인 앨렌 긴스버그(Allen Ginsberg,1926∼1997)와 실험극단 리빙씨어터(Living Theatre), 그리고 음악가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에 대한 비디오 작품을 남김으로써 이들이 보여준 자유와 삶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였다.
Ⅱ. 사이키델릭 + 사이버네틱스 = ??
미술사학자 데이빗 조슬릿(David Joselit)은 백남준의 참여 TV에 사용된 댄싱패턴이 가진 의미를 ‘사이키델릭 경험’으로 해석하면서 당대 히피운동이 LSD를 통해 시도한 환각의 효과를 백남준이 차용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비디오 신디사이저 플러스」(1970)라는 글에서 백남준은 자신의 참여 TV가 중독이라는 부작용 없이 마약의 존재론을 보다 안전하고 진정성 있는 매체에 이식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라고 정의하였다. 그는 <백-아베 비디오 합성기>를 사용해 비디오 신호를 왜곡하고 이 이미지를 확산시키면서 상품의 흔적을 제거하는 동시에 진동 혹은 잡음을 일으키고자 했다. 백남준은 상품 자본주의 시대, 영성의 새로운 대체물인 텔레비전의 시스템을 교란시켜 시청자가 화면 너머의 저곳으로 이동하게끔 독려하였다.
Ⅲ. 켜라, 맞춰라, 빠져나와라
인간의 뇌(신경망)와 마음에 대한 관심은 사이버네틱스와 반문화를 긴밀하게 이어주는 주제였다. 이 시기의 많은 학자들은 약물 실험이 섬광과 신체와의 피드백 효과를 경험하게 하여 마음과 물질의 구분을 해체시켜 근대사회를 거치며 잃어버린 인간의 영성을 회복시킨다고 보았다. 백남준은 시공을 초월하는 경험을 준다는 점에서 비디오와 텔레비전이 약물의 효과를 일상에서 제공하는 대체물이라고 보았다. 그는 신체와 텔레비전 모두 정보의 교환이 이루어지는 하나의 미디어로 간주했고 정보를 교환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생각했다.
Ⅳ. 비디오 텔레파시
백남준은 텔레비전이 먼 거리의 정보를 즉각적으로 전달하고 비디오가 그 정보를 저장하고 조작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정보의 물리적 교환을 넘어서 빛을 기반으로 한 이 새로운 매체는 정신의학자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1875∼1961) 이 동시성이라고 정의한 현상을 일상의 공간에서 실현시켰다.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고 인과관계가 없어 보이는 것들이 의미를 매개로 나타나는 동시성의 경험은 나의 정신(혹은 마음)이 계기가 되어 시공의 거리로 떨어진 사물을 내 앞에 출현시킨다는 차원에서 창조성과 연결된다. 백남준이 자신의 비디오아트가 예술과 소통이 겹쳐지는 가운데의 씨앗과 같은 것이라고 했던 데에는 소통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마음이야말로 지금, 여기를 넘어서게 할 창조성의 원천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