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경력

전시명 백남준의 주파수로: 스코틀랜드 외전
전시기간 2013-08-09 ~ 2013-10-19
전시장 백남준의 주파수로: 스코틀랜드 외전
기획
예술에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는 데 있어 백남준만큼 위대한 영향을 미친 예술가는 없었다.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을 형성하게 될 여러 변화들을 백남준은 미리 내다보았으며 이는 ‘참여 TV’, ‘랜덤 액세스 정보’, ‘비디오 코뮨’ 같은 그의 선구적 개념들에서도 잘 드러난다. <백남준의 주파수로: 스코틀랜드 외전>은 50년 전 1963년 독일 부퍼탈에서 열린 백남준의 첫 개인전 <음악의 전시 – 전자 텔레비전>을 기념하고자 한다. 이 전시에서 백남준은 텔레비전이라는 테크놀로지를 처음으로 본격 예술의 영역으로 가져오면서 텔레비전을 촉각적이고 다감각적인 매체로 제시하였다. 1960년대 반체제적 사회 운동의 흐름 속에서 백남준은, 예술가가 테크놀로지를 인간화시켜야 하고 제도의 벽을 허무는 데 동참해야 한다고 믿었다. 음악가로 교육받은 백남준은 자신의 예술 레퍼토리의 물리적 재료로서 테크놀로지를 다뤘으며 이는 후에 비디오, 위성, 방송, 로봇, 레이저까지 확장되었다.
‘예술과 테크놀로지’라는 대주제 아래 열리는 2013년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에 공식 초청된 백남준아트센터는, 찰스 다윈,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공부한 유서 깊은 에든버러대학교의 미술관인 탤봇라이스갤러리를 백남준의 작품들이 내뿜는 전자기파의 공명으로 가득 채우고자 한다. <백남준의 주파수로>는 비디오, 조각, 사진, 아카이브 자료 등 백남준아트센터의 다양한 소장품을 중심으로, 진지하고 엄밀하면서도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는 사상가이자 실험가인 예술가 백남준의 면모를 재조명할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전자기 이론과 텔레비전 테크놀로지의 발생지인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첫 백남준 전시는 테크놀로지와 창의적으로 관계 맺기를 고취하면서 백남준이 역사 속 예술가가 아니라 지금 현대인들에게도 여전히 혁명적인 예술가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게 될 것이다.
전시 개막 주에는 퍼포먼스 아트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음악, 미술, 퍼포먼스 등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진정한 탈경계인으로서 백남준의 예술 정신을 현재에 되살리며 백남준아트센터의 여러 프로젝트에 참여한 바 있는 다케히사 고수기(일본), 권병준(한국), 이옥경(한국), 하룬 미르자(영국) 등 네 명의 국제적 아티스트들의 공연은 전시의 진폭을 더욱 넓혀 줄 것이다. 그리고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이 끝난 후 9월과 10월에도 계속될 <백남준의 주파수로>전은 특별히 홀리루드하우스 궁전의 퀸스 갤러리에서 열리는 영국왕실컬렉션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인간의 역학>전과 함께 열린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테크놀로지에 대한 예술가의 가장 혁신적인 탐구를 상징하는 다빈치와 백남준, 두 인물의 시대를 초월하는 예술 정신이 에든버러에서 타전되어 그 너머까지 울려 퍼지기를 기대한다.
자세한 정보는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www.eif.co.uk/paik
전시개요
조지안갤러리에 들어서는 관람자는 <글로벌 그루브>의 선율에 몸을 맡길 준비를 해야 한다. 비언어적 의사소통 방식인 음악과 춤을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의 매체로 제시한 백남준의 대표적 비디오다. 같은 전시실에서 함께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것은 <비디오 샹들리에 No.1>이다. 둥근 천장으로부터 복잡하게 얽힌 채 샹들리에 형태로 늘어뜨려진 케이블을 타고 소형 텔레비전 화면의 동영상과 전구의 불빛이 반짝이는 모습은 위로부터 아래로의 운동감을 형성하면서 전시장 공간의 신고전주의 건축 양식과 의외의 조화를 이룬다.

화이트갤러리에서는 스무 개의 소형 모니터가 비디오 영상을 보여주는 육중한 금장 액자 작품 <퐁텐블로>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전통적으로 명작을 감상하는 금장 액자 안에 캔버스 대신 넣은 브라운관이 빠르고 힘차게 움직이며 계속 변화하는 이미지들을 보여준다. <퐁텐블로>의 주술 같은 이미지들을 뒤로 하고 들어서면 백남준식 음악적 경이의 방이 펼쳐진다. 재미있게 인간의 모습을 한 비디오 로봇 <슈베르트>와 <베토벤>은 각각 한 벽을 차지하며 서로를 마주하고 있다. 다양한 구형 텔레비전과 라디오 케이스로 만들어진 이들 조각들은 움직이지는 않지만 모니터에서 반짝이며 흘러가는 비디오 이미지는 이 로봇들에 마법 같은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전시실 한복판에는 <TV 첼로>의 투명한 몸체가 복잡한 텔레비전 내부 회로를 모두 드러내며 기계적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화면에서는 샬롯 무어먼이 <TV 첼로>를 연주하고 나체의 여인이 달걀의 형태로 몸을 구부리고 있는 사뭇 대조적인 ‘여성성’의 비디오가 나온다. 고전음악의 뮤직비디오라 할 수 있는 <전자 오페라 2번>의 피아노는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에 맞춰 화염에 휩싸이고, <피아노 콘서트>의 피아노는 백남준이 바닥에 차례로 놓은 달걀, 과일, 라디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향해 반복적으로 밀어뜨리는 퍼포먼스를 위해 장치된 악기이다. <플럭서수스 여인(교향곡 7번)>에서 바이올린은 리모콘과 한 조가 되어 강 위를 떠가는 악기의 여정인 퍼포먼스를 행하고, <교향곡 6번>에서는 연주자가 음표 하나를 연주한 후 다음 사람에게 바이올린의 활만 전달하고, 다음 연주자는 그 활을 가지고 또 다른 음 하나를 연주한 후 다음 사람에게 다시 그 활을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어 연주하기가 퍼포먼스이다. <교향곡 5번>은 시간 인식, 성(性)과 정치, 고전 음악 등의 요소가 뒤섞인 신비로운 지시문으로 가득 차 있는 스코어다.

이번 전시에는 특별히 ‘비디오 응접실’을 마련하여 백남준의 대표적 비디오 작품들을 구형 CRT 텔레비전으로 상영하였다. 이 중 <모음곡 212>의 경우 제목에서부터 음악성을 표방한다. 모음곡이라는 음악의 형태에 뉴욕의 지역 번호인 212를 붙여 만든 제목 아래 각각 오분 여 정도 길이의 짧은 비디오 30편으로 되어 있다. 백남준은 여기서 거대 미디어 정보 산업에 지배당하며 변화하고 있는 뉴욕이라는 도시를 드러내면서, 다채로운 음악 혹은 소리 실험의 사운드와 뉴욕 시티스케이프의 단편들을 융합시켰다.

백남준의 작업은 어떤 정해진 길을 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기계의 회로를 만지면서 길을 찾아 나가는 것, 실수와 우연 속에서 놀라운 결과를 발견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그의 실험 방식이자 사유 방식은 <백-아베 비디오 신디사이저>에 집약되어 있다. 텔레비전 이미지를 편집, 조작, 합성하기 위해 개발된 이 비디오 합성기는 기존에 그가 벌였던 “텔레비전 실험들을 모두 축적하여 한꺼번에 플레이 할 수 있는 콘솔”이었다. <백-아베 비디오 합성기>는 WGBH에서 1970년 방영된 네 시간 생방송 프로그램 <비디오 코뮨: 비틀즈의 처음부터 끝까지>에 처음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의 초기 실험 텔레비전들과 함께 아카이브 자료를 통해 백남준의 뉴욕 작업실을 엿볼 수 있는 섹션도 구성되었다. 함께 전시된 1963년의 사료들은 《음악의 전시》를 생생하게 기록하며 그 역사적 현장으로의 시간 여행을 안내한다. 경계 교란자인 백남준의 파괴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에너지로 가득 찬 《백남준의 주파수로》 전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손과 얼굴>, <TV 부처>처럼 사뭇 명상적인 작품들은,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는 것, 서로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을 하나로 직조하는 데 탁월한 백남준을 잘 보여준다.